피자를 시킬 때마다 피클을 혼자 다 먹습니다. 집에서 저 말고는 아무도 손을 안 대거든요. 덕분에 피클 한 봉지가 통째로 제 차지가 되는데, 그게 사실 그리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최근 영국에서 피클 판매량이 전년 대비 12%나 뛰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제가 혼자 즐기던 이 절임 음식이 왜 갑자기 주목받는지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발효식품과 장내미생물, 피클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
솔직히 피클이 건강식이라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피자 먹을 때 입가심용으로 집어 먹는 거였으니까요. 아삭거리는 식감에 상큼한 신맛이 느끼함을 잡아줘서 좋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장 건강에 좋다'는 얘기로 이어지리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2021년 국제학술지 셀(Cell)에 발표한 연구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건강한 성인 36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쪽은 발효식품을 집중적으로 먹게 하고, 다른 쪽은 식이섬유 위주 식단을 유지하게 한 뒤 17주간 추적한 결과, 발효식품을 많이 먹은 그룹에서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확연히 높아졌습니다(출처: Cell Journal). 혈액 속 염증 지표도 함께 낮아졌다고 하니, 단순한 반찬 이야기가 아닌 셈입니다.
여기서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란, 우리 장 속에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균들이 살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장 생태계가 얼마나 풍부하냐는 건데, 종류가 다양할수록 유해균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걸 억제하고 면역 기능도 고르게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인은 가공식품과 정제 탄수화물 섭취가 많아지면서 이 다양성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발효식품에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가 들어 있습니다. 프로바이오틱스란 살아있는 상태로 장까지 도달해 유익한 영향을 주는 미생물을 말하는데, 유산균이 대표적입니다. 피클이 이 프로바이오틱스의 공급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최근 들어 더 부각되고 있는 겁니다. 김치나 사우어크라우트처럼 전통 발효 방식으로 만든 절임 식품이 다시 주목받는 배경도 여기 있습니다.
-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높을수록 소화 기능과 면역력 유지에 도움
- 발효식품 속 프로바이오틱스는 유해균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
- 스탠퍼드대 연구에서 발효식품 섭취 그룹의 염증 지표가 유의미하게 감소
- 김치, 사우어크라우트, 피클 등 각국의 전통 절임 음식이 모두 같은 원리로 작용
사우어크라우트와 진짜 발효 피클, 어디서 찾아야 할까
소시지 전문점에 가면 독일식 양배추 절임이 곁들여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그걸 꽤 좋아합니다. 처음엔 그냥 양배추를 절인 건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였습니다. 사우어크라우트란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자연 발효시킨 독일의 전통 음식으로, 유럽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먹어온 방식입니다. 피클과 같은 맥락의 발효 절임 채소인 셈인데, 제 경험상 신맛의 결이 조금 다릅니다. 피클이 좀 더 달큰한 신맛이라면, 사우어크라우트는 묵직하고 깊은 발효 향이 납니다.
얼마 전 미국 부통령이 사우어크라우트를 꾸준히 먹으며 체중을 관리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칼로리가 낮은 데다 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소시지 집에서 집어 먹던 그 음식이 이런 맥락에서 언급된다니 새삼 반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봤는데, 마트에서 파는 피클 대부분은 식초와 설탕으로 빠르게 절인 제품입니다. 자연 발효 피클과 식초 절임 피클은 만드는 방식이 완전히 다른데, 자연 발효 방식은 소금물 안에서 유산균이 자라면서 시간을 두고 발효가 진행됩니다. 반면 식초 절임은 식초의 산성을 이용해 단시간에 절이는 방식이라, 살아있는 유산균이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출처: Harvard Health Publishing).
즉 건강 목적으로 피클을 먹는다면, 식품 라벨에서 '자연 발효', '생균 함유' 같은 표현을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니면 집에서 소금물 발효 방식으로 직접 담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오이나 당근을 소금물에 담가 상온에서 며칠 두면 자연 발효가 일어나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만든 피클은 시판 제품과는 식감과 향이 확실히 다르고, 먹고 나서 속이 더 편한 느낌도 납니다.
다만 과하게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절임 과정에서 나트륨이 상당히 들어가기 때문에, 하루에 조금씩 전체 식단의 일부로 곁들이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우리나라 김치도 마찬가지인데, 예전보다 섭취량이 많이 줄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먹는 반찬에 이미 발효 식품이 있었는데, 그걸 점점 멀리하게 된 셈이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Q. 마트에서 파는 피클도 장 건강에 좋은가요?
A. 제가 직접 라벨을 여러 번 확인해봤는데, 국내 마트에서 흔히 보이는 피클 대부분은 식초와 설탕으로 절인 제품입니다. 이 방식으로 만든 피클에는 살아있는 유산균, 즉 프로바이오틱스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 건강을 목적으로 한다면 '자연 발효' 또는 '생균 함유' 표기가 있는 제품을 고르거나, 직접 소금물 발효 방식으로 담가보는 게 낫습니다.
Q. 사우어크라우트와 김치는 효능이 비슷한가요?
A. 둘 다 자연 발효 과정을 거친 채소 절임이라는 점에서 원리는 같습니다. 유산균을 비롯한 프로바이오틱스가 생성되고, 식이섬유도 함께 섭취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용하는 재료와 양념이 다르고, 세부적인 미생물 구성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둘 다 꾸준히 먹으면 속이 가볍고 소화가 잘 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Q. 피클을 매일 먹어도 괜찮나요?
A. 매일 조금씩 먹는 건 괜찮지만, 절임 과정에서 소금이 많이 들어가는 제품이 많기 때문에 나트륨 섭취량을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에 몇 조각 정도를 전체 식사의 일부로 곁들이는 방식이 현실적이고 무난합니다.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보다는 꾸준히 소량씩 이어가는 게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입니다.
Q. 집에서 발효 피클 만들기 어렵지 않나요?
A.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오이나 당근 같은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 상온에서 2~3일 두면 자연 발효가 시작됩니다. 소금 농도나 온도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저도 한번 시도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직접 담근 발효 피클은 시판 제품에 없는 살아있는 유산균이 그대로 들어 있다는 점에서 장 건강 측면으로는 확실히 유리합니다.
결론
피자 피클을 혼자 독차지하던 제가 이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맛있어서 먹었던 건데, 알고 보니 그 식감과 신맛 뒤에 장내 미생물과 프로바이오틱스 이야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서양에도 피클, 사우어크라우트, 요거트처럼 발효 음식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도 새삼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에 김치가 있듯, 어느 문화권이든 오랫동안 먹어온 발효 음식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다만 시판 피클을 그대로 사 먹는 것만으로 장 건강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연 발효 방식으로 만든 제품을 고르거나, 집에서 직접 소금물 발효로 담가보는 것을 한번쯤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우리 밥상 위에 훌륭한 발효 식품이 있는데, 그걸 조금 더 의식적으로 챙겨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