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반찬이 상에 오르면 어릴 때는 솔직히 반갑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물들을 한데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주시면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합니다. 초가을에 잠깐 나오는 고춧잎 나물도 그랬습니다. 베타카로틴(β-Carotene)과 칼슘이 듬뿍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제대로 알게 됐는데, 그동안 얼마나 귀한 걸 모르고 먹었나 싶어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베타카로틴과 칼슘, 고춧잎이 품고 있는 영양소
저는 솔직히 오래전까지 나물류 반찬에는 식이섬유 정도만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단백질도 아니고, 지방도 아니니까 그냥 씹는 맛으로 먹는 거 아닌가 하고 넘겼던 거죠. 그런데 막상 고춧잎의 성분을 들여다보니 제가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고춧잎에는 베타카로틴(β-Carotene)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베타카로틴이란 체내에 흡수된 뒤 필요한 만큼 비타민 A로 전환되는 지용성 색소 성분을 말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눈이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 즉 암순응 기능에 관여하고, 피부와 점막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녹황색 채소에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고춧잎이 바로 그 녹황색 채소 중 하나입니다(출처: 농촌진흥청).
칼슘도 눈에 띕니다. 일반적으로 칼슘 하면 우유나 치즈 같은 유제품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데, 잎채소에서도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는 점이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보고 가장 놀랐던 부분입니다. 칼슘은 뼈와 치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미네랄로, 신경과 근육이 제 기능을 하는 데도 관여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뼈 밀도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잎채소를 꾸준히 식단에 올리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항산화 성분도 빠지지 않습니다. 비타민 C와 카테킨(Catechin)이 함께 들어 있는데, 카테킨이란 폴리페놀의 일종으로 체내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성분입니다. 쉽게 말해 세포가 산화되어 손상되는 속도를 늦춰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비타민 C는 그 자체로 항산화 작용을 하면서 철 흡수도 돕습니다. 제가 이 성분들을 알게 된 뒤로, 어머니가 예전부터 제철마다 고춧잎을 챙겨 무쳐 주셨던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륨(Potassium)도 주목할 성분입니다. 칼륨은 체내 수분과 전해질 균형을 조절하고 나트륨 배출을 돕는 미네랄입니다. 된장, 간장, 젓갈처럼 염도가 높은 음식을 즐겨 먹는 한국인 식단 특성상 나트륨 과잉 섭취가 잦은데, 고춧잎 같은 채소로 칼륨을 함께 챙기면 그 균형을 맞추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 베타카로틴(β-Carotene):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 시각 기능과 피부·점막 유지에 관여
- 칼슘(Calcium): 뼈와 치아 형성 및 유지, 신경·근육 기능 정상화에 필수
- 카테킨(Catechin): 폴리페놀 계열 항산화 성분, 세포 산화 스트레스 감소에 기여
- 비타민 C: 항산화 작용 및 철 흡수 보조
- 칼륨(Potassium): 전해질 균형 조절, 나트륨 배출 촉진
건조나물로 만들면 사계절 내내 활용 가능
고춧잎을 먹을 수 있는 시기는 9월에서 10월 사이, 아주 짧습니다. 제가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러면 그 두 달 안에만 먹어야 하나' 싶어 아쉬웠는데, 다행히 건조나물로 만들어 두면 계절이 지나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생 고춧잎을 먹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역시 나물 무침입니다. 억센 줄기와 상한 잎을 골라낸 뒤 깨끗이 씻고, 끓는 물에 살짝 데치면 됩니다. 데친 직후 찬물에 바로 헹궈 물기를 꼭 짠 다음, 된장이나 국간장에 다진 마늘과 참기름 혹은 들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면 완성입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고추장으로 조금 진하게 무쳐도 고춧잎 특유의 풋풋한 향이 전혀 묻히지 않고 오히려 잘 어울렸습니다.
건조나물로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데쳐서 헹군 고춧잎의 물기를 충분히 짜낸 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뒤집어가며 말리면 됩니다. 농촌진흥청에서도 이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잘 말린 고춧잎은 필요할 때 물에 불려 나물로 무치거나
볶음 요리에 쓸 수 있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제 경험상 말린 나물은 냉동 보관까지 병행하면 더 오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나물 무침이나 건나물 외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김치나 장아찌처럼 오래 두고 먹는 저장 음식으로도 담글 수 있고, 고춧잎 지짐이나 조갯살전처럼 전 종류에 섞어도 은은한 향이 잘 살아납니다. 골뱅이무침에 넣으면 쫄깃한 식감과 향긋한 고춧잎이 섞여서 색다른 별미가 되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먹기 전까지는 어울릴까 싶었거든요.
어른들이 제철마다 별다른 설명 없이 챙겨 주셨던 이 나물 반찬이, 사실은 이렇게 세심하게 계산된 영양 공급원이었다는 게 이번에 자료를 보면서 새삼 느껴졌습니다. 그냥 배부르라고 주신 게 아니었다는 걸,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고춧잎 나물은 언제 먹는 게 가장 좋은가요?
A. 고춧잎은 9월에서 10월 사이, 고추 수확이 이어지는 초가을이 제철입니다. 이 시기에 딴 연한 잎이 향도 좋고 조직도 부드러워서 데쳐 무치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제철이 짧기 때문에 이 기간 안에 건조나물로 만들어 두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Q. 고춧잎에 칼슘이 많다는 게 사실인가요? 우유보다 낫다고 봐도 되나요?
A. 고춧잎이 칼슘이 풍부한 잎채소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우유와 직접 비교하기보다는, 유제품을 잘 못 먹거나 채소 위주 식단을 유지하는 분들이 칼슘을 보충하는 경로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한 가지 식품에만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식재료를 통해 나눠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Q. 고춧잎 건조나물은 어떻게 보관하면 되나요?
A. 데쳐서 충분히 말린 고춧잎은 밀폐 용기나 지퍼백에 넣어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하면 됩니다. 습기가 생기면 곰팡이가 필 수 있으므로 완전히 건조된 것을 확인한 뒤 보관하는 게 중요합니다. 냉동 보관을 병행하면 더 오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Q. 고춧잎 나물 무칠 때 된장이랑 고추장 중 어느 게 더 잘 어울리나요?
A. 둘 다 잘 어울리는데, 취향 차이가 있습니다. 된장은 고춧잎의 풋풋한 향을 자연스럽게 살려주고, 고추장은 조금 더 진하고 칼칼한 맛을 냅니다. 제가 직접 해봤을 때는 국간장에 참기름을 넣어 담백하게 무치는 쪽이 고춧잎 본연의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론
어릴 때는 나물 반찬이 상에 오르면 '이걸 굳이 왜 먹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고춧잎 하나에 베타카로틴, 칼슘, 카테킨, 칼륨이 고루 들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그때 그 반찬들이 하나도 쓸모없는 게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걸립니다. 선조들이 제철마다 챙겨 드시던 음식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9월이 되면 고춧잎이 잠깐 나옵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보이거든 한 번 사서 데쳐 무쳐 보시길 권합니다. 남은 건 건조나물로 만들어 두면 겨울에도 요긴하게 쓸 수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너무 하찮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밥상 위에 올려놓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